중양절 사진

“独在異郷為異客, 毎逢佳節倍思親, 遥知兄弟登高処, 遍挿茱萸少一人”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왕유(王維)가 중양절을 읊은 시로 중국에서는 누구라도 쉽게 외울 수 있는 유명한 시구입니다. [9월 9일 산동의 형제들을 생각하며]라는 제목의 이 시는 고향을 떠난 작자가 친지들이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수유나무 가지를 몸에 꽂고 나서 가지가 하나 남으니 바로 작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정경을 그려보는 내용인데 기발한 구상이 돋보이는 명작입니다.

음력 9월 9일은 중구라고도 합니다. 9가 두번 겹쳤다는 뜻이지요. 9는 양수(陽數)라서 양이 겹쳤으므로 중양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이런 풍습은 이미 한나라 때에 벌써 생겨났다고 합니다.

남조(南朝)때의 문학가 오균(吳均)이 쓴 [속제해기(續齊諧記)]에 이런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동한(東漢)때 불장방(佛長房)이라고 부르는 한 선인(仙人)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환경(桓景)이라는 제자 1명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불장방이 환경을 불러 음력 9월9일 날 집에 한 차례 큰 재난이 닥칠 것이므로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 보라고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처 방법으로 가족 모두가 빨간 손주머니 하나씩을 만들어 그 안에 산수유를 넣고 이를 팔뚝에 동여맨 다음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라고 알려주면서 이러면 재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부랴부랴 집에 돌아온 환경은 스승의 충고대로 0월 9일 중양절날 가족을 이끌고 재난을 피하기 위해 높은 곳을 찾았습니다. 저녁에 돌아와보니 소,양,개와 닭 등 집에 있던 가축과 가금은 모두 죽어있었습니다. 그 뒤 불장방은 환경에게 말,소,양,닭,개, 돼지 등 육축(六畜)이 화를 대신했기에 일가족이 무사히 재난을 넘길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앞다퉈 환경을 흉내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중양절의 명절 풍습으로 까지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설은 어디까지 전설에 불과합니다. 이를 전부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민속학자들은 이렇게 민간에서 기원된 전설의 대부분은 먼저 민간에 어떤 풍습이 존재하고 난 뒤에 일반인들이 그 산생 과정과 성행 원인을 궁금하게 여기자 이를 해석하기 위해 누군가가 지어낸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이렇게 생겨난 이야기는 전해져 내려오면서 그 영향력이 커지면서 점차 진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반대로 이를 진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중양절에 국화주를 마시고 산수유를 몸에 지니는 것은 단오절에 웅황주(雄黃酒)를 마시며 창포(菖蒲)를 꽂는 것과 마찬가지로 벌레의 침습을 막고 병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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