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절 사진

청명절에 해마다 양력 4월 5일을 전후로 있는 청명절(淸明節)에 하는 일은 중국과 한국이 거의 비슷하다. 조상의 성묘뿐 아니라, 답청, 그네뛰기, 버드나무 가지 꽂기, 공놀이 등 각종 운동이나 풍습들도 전해진다.

청명절에 관한 전설이 있다. 춘추시기에(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는 박해를 피하여 국외로 망명길에 올랐다. 망명을 가던 도중에 인적이 없는 곳에서 피로하고 배도 고파 더 이상 서있을 힘도 없었다. 그때 그를 수행한 개자추(介子推)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가서 몰래 자기의 허벅지살을 한덩어리 도려내어 탕을 끓였다. 중이는 그것을 먹고 서서히 정신을 회복하였다. 그리고는 19년후 중이는 진나라의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진문공(晉文公)이다.

진문공은 즉위한 후에 지난날 망명길에 올랐을 때 자기를 수행했던 공신들에게 대대적인 포상을 하였지만, 유독 개자추만 포상에서 제외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개자추에게 불공평하다고 하면서 왕에게 직접 포상을 건의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개자추는 그렇게 논공행상을 일삼는 사람들을 경멸하였다. 그는 조용히 행장을 꾸려서 면산(綿山)으로 가서 은거하였다.

진문공은 그 소식을 들은 후 대단히 부끄러워하며 직접 사람들을 데리고 개자추의 집을 찾아갔지만 개자추는 이미 집을 떠나 면산에 은거한 뒤였다. 다시 진문공은 그를 찾아 면산으로 갔지만 면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사람을 찾아내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이때 어떤 사람이 진문공에게 꾀를 하나 고해 바쳤다. 즉 면산의 삼면에서 불을 놓아 개자추를 밖으로 나오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허락한 진문공은 면산에 불을 놓게 했지만 개자추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불이 꺼진후에 사람들은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은 개자추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모습을 본 진문공은 통곡을 하였다.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입관하려 할 때 나무동굴 속에 혈서가 있었다. 그 혈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살을 왕께 바쳐 충성을 다한 것은, 왕께서 항상 청명하시길 바랬기 때문이다” 개자추를 기념하기 위하여 진문공은 그 날을 “한식절(寒食節)”로 제정하고, 사람들에게 불을 피우는것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게 했다. 그 이듬해에 진문공은 신하들과 함께 산에 올라 제사를 지내다가 그 버드나무가 다시 소생한 것을 보았다.

이에 그 버드나무에 “청명류(靑明柳)”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천하에 알리고, 한식절 뒷날을 청명절(靑明節)로 제정하였다. 현대 중국인들은 매년 4월 5일을 전후한 청명절을 주로 성묘일로 삼고 있다. 이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조상이나 혁명열사의 묘지 앞이나 기념비 앞에서 성묘와 헌화를 하고 애도를 표시한다.

그리고 청명절 전후에 봄놀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탄춘,쉰춘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꽃피는 춘삼월이면 세상만물이 생기를 띠고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므로 오래 전부터 청명에 답청하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그외 나무심기,그네뛰기,연 날리기 등의 풍습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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